지난 이틀간 이스탄불에서 겪었던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솔직히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새로운 기분으로 아시아 지구를 탐방하기로 예고한 날. 과연 유럽 지구와는 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또 어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이스탄불, 오늘은 또 어떤 얼굴을 보여줄 테냐.
📑 목차
- 아시아로 가는 길: 에미뇌뉘에서 카디쿄이까지, 그리고 또다시 확인한 사기의 기억
- 카디쿄이의 첫인상: 광장을 채운 아이들의 열정적인 민속춤 공연
- 보스포루스 해협의 바람과 베일레르베이 궁전의 높은 문턱
- 카라쿄이의 맛: 고등어 케밥과 아이란으로 채운 늦은 점심
- 갈라타 다리를 건너 그랜드 바자르의 미로 속으로
- 내일의 여정: 탁심 광장과 갈라타 타워, 숙소 주변 탐방 예고
아시아로 가는 길: 에미뇌뉘에서 카디쿄이까지, 그리고 또다시 확인한 사기의 기억
오늘의 주 목적지는 이스탄불의 아시아 지구, 그중에서도 활기 넘치는 카디쿄이(Kadıköy) 지역이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트램을 타고 에미뇌뉘(Eminönü) 역으로 향했다. 에미뇌뉘 선착장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해상버스(페리)들로 분주했다. 우리는 카디쿄이행 페리에 몸을 실었다.
캡션: 에미뇌뉘 선착장에서 카디쿄이로 향하는 페리에 올랐습니다. 오늘은 제발 순탄하길!
어제 구매했던 20회권 교통카드를 사용했는데, 여기서 또 한 번 씁쓸한 사실을 확인해야 했다. 어제 티켓을 구매할 때 “도와주겠다”며 접근했던 현지인. 분명 친절을 베푸는 줄 알았지만, 아무래도 그 과정에서 우리가 뭔가를 더 지불했거나, 정상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티켓을 구매했던 모양이다. 정확히 어떤 수법에 당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정상적인 사용과정에서 느껴지는 찜찜함은 어쩔 수 없었다. 이스탄불은 정말이지, 잠시만 한눈팔면 코 베어 가기 십상인, 그야말로 ‘사기꾼들의 천국’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여행객을 상대로 한 이런 불쾌한 경험은 도시 전체의 이미지를 깎아내린다는 것을 왜 모르는 걸까.
카디쿄이의 첫인상: 광장을 채운 아이들의 열정적인 민속춤 공연
찜찜한 마음을 안고 도착한 카디쿄이. 부두에서 내려 조금 걷자니 어디선가 시끌벅적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넓은 광장에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고, 그 중심에서는 어린아이들이 화려한 전통 의상을 입고 민속무용을 선보이는 경연대회가 한창이었다.
캡션: 카디쿄이 광장에서 우연히 만난 어린이 민속무용 경연대회! 아이들의 열정이 대단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풍경이었다. 앙증맞은 몸짓으로 진지하게 춤을 추는 아이들의 모습, 아이들을 응원하는 가족들의 열띤 함성, 그리고 광장을 가득 메운 터키 전통 음악까지.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생동감 넘치는 축제의 현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내가 기대했던, 새로운 문화와의 첫 만남이었다. 우리는 한참 동안 자리에 앉아 아이들의 공연을 감상했다. 조금 전까지 이스탄불에 대해 쌓였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이 순간만큼은 조금이나마 희석되는 듯했다.
보스포루스 해협의 바람과 베일레르베이 궁전의 높은 문턱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공연을 뒤로하고, 우리는 버스를 타고 보스포루스 대교 근처로 이동했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거대한 다리를 직접 보고 싶었고, 그 근처에 있다는 베일레르베이 궁전(Beylerbeyi Sarayı)도 방문할 계획이었다.
캡션: 보스포루스 대교의 웅장한 모습. 하지만 근처 베일레르베이 궁전은 또다시 높은 입장료의 벽에 막혔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역시나 우리를 맞이한 것은 ‘무시무시한 입장료’였다. 어제 톱카프 궁전에서 한 번 데인 터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곳 역시 만만치 않은 가격표를 자랑하고 있었다. 궁전의 화려함보다는 그 가격에 먼저 질려버린 우리는 또다시 입장을 포기했다. 대신 궁전 옆, 보스포루스 해협이 시원하게 펼쳐진 조그마한 공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강태공들은 한가로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고, 갈매기들은 끼룩거리며 하늘을 날았다. 비록 궁전 내부는 보지 못했지만,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현지인들의 소소한 일상을 엿보는 것만으로도 나름의 위안이 되었다.
카라쿄이의 맛: 고등어 케밥과 아이란으로 채운 늦은 점심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카디쿄이로 돌아와 해상버스를 탔다. 이번에는 유럽 지구의 카라쿄이(Karaköy) 부두로 향했다. 이미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배가 꽤 고팠다. 카라쿄이 부두 주변에는 활기찬 식당가가 형성되어 있었다. 우리는 그중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이스탄불의 명물 중 하나인 고등어 케밥과 터키의 전통 요거트 음료인 아이란을 주문했다.
캡션: 카라쿄이에서 맛본 고등어 케밥과 아이란! 짭짤한 고등어와 상큼한 아이란의 조화가 꽤 괜찮았습니다.
갓 구워낸 고등어 살과 신선한 채소가 빵 사이에 푸짐하게 들어간 고등어 케밥은 생각보다 비리지 않고 맛있었다. 짭짤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고, 시원하고 짭짤한 아이란은 그 맛을 더욱 돋우었다. 드디어 이스탄불에서 ‘맛있는’ 추억 하나를 만들었다는 생각에 조금은 기분이 나아졌다.
갈라타 다리를 건너 그랜드 바자르의 미로 속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운 후, 우리는 갈라타 다리(Galata Köprüsü)를 도보로 건너기로 했다. 다리 위에는 수많은 낚시꾼이 저마다의 자리를 잡고 세월을 낚고 있었고, 다리 아래층에는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줄지어 있었다. 이스탄불의 일상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풍경이었다.
캡션: 갈라타 다리를 건너며 만난 이스탄불의 활기찬 풍경. 낚시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갈라타 다리를 건너자 곧바로 그랜드 바자르(Kapalıçarşı)로 향하는 길이 이어졌다. 강변에서부터 그랜드 바자르 입구까지 길게 늘어선 상점가를 지나 드디어 도착한 그랜드 바자르! 그 규모는 상상 이상으로 거대했고, 수많은 상점과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마치 거대한 미로 속에 들어온 듯했다.
캡션: 끝없이 펼쳐진 상점들의 향연, 그랜드 바자르! 정말 거대하고 화려한 시장입니다.
형형색색의 터키 램프, 아름다운 도자기, 향신료, 차, 카펫, 가죽 제품 등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듯했다. 정신없이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다리도 아프고 목도 말라왔다. 마침 눈에 띈 노상 찻집에 자리를 잡고 시원한 음료와 터키식 커피를 마시며 잠시 숨을 돌렸다. 너무 많은 물건과 인파에 압도되어 무언가를 잔뜩 구매할 엄두는 나지 않았고, 그저 이 독특한 분위기를 즐기며 조그마한 기념품 몇 개를 사는 것으로 만족했다.
내일의 여정: 탁심 광장과 갈라타 타워, 숙소 주변 탐방 예고
아시아 지구에서의 새로운 경험, 여전히 실망스러운 사기와 입장료, 그리고 소소한 즐거움이 교차했던 이스탄불에서의 3일 차도 이렇게 저물어갔다.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이 뒤섞여 이 도시가 더욱 알쏭달쏭하게 느껴진다.
내일은 이스탄불의 또 다른 중심지인 탁심 광장(Taksim Meydanı)과 갈라타 타워(Galata Kulesi) 등 숙소 주변의 명소들을 둘러볼 예정이다. 과연 내일은 이스탄불이 우리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부디 더 이상의 실망은 없기를 바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